용산역사박물관 개관 1층 답사기
용산역사박물관은 옛날 용산철도병원 본관 1928 을 리노베이션하여 재탄생되었습니다. 지금의 용산이 되기까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려보는 역사 문화 랜드마크로서 용산의 진정한 명소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취지로 2022년 3월에 개관했습니다. 용산을 보면 우리의 역사가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1층 답사기입니다. 1층만 둘러보아도 보고 듣고 배울 내용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열려있는 문이 마치 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용산 도시를 살리다. 도시를 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마치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도시도 순환해야 합니다. 우리 도시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이 원활하게 이어져야 진정으로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용산역사박물관 아카이브미디어월
용산역사박물관 아카이브미디어월입니다. 검은색스크린 어디든지 터치하세요. 터치하시면 사진이 나옵니다. 보고 싶은 사진을 터치하시면 확대되고 세부사진도 나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여기는 원하는 사진을 터치하면 확대되면서 간략한 화면으로 소개를 해줍니다. 아래에는 용산역사박물관 아카이브미디어월 영상을 참고로 공유드립니다.
용산역사박물관 휴게쉼터
용산역사박물관 휴게쉼터가 단촐하고 아늑해보입니다. 우측 현관과 위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있습니다.
용산역사박물관 종합안내도
용산역사박물관 종합안내도입니다.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용산역사박물관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
18세기 수상 교통이 발달하면서 뱃길 중심이었던 경강을 기점으로 전국 단위의 유통 체계가 잡혔습니다. 경강에서도 서강, 마포, 용산 일대의 상권이 크게 성장했는데 그중 용산은 세곡 운송에 특화된 지역이었습니다.
양화진과 마포를 제치고 개시장이 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지 못했던 경강.
조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장으로. (중략) 18세기 이전 양화와 마포의 서강 , 마포와 노량의 용산강, 노량과 한강진의 한강 3강으로 구분되던 경강은 18세기 후반 양화진, 서강, 마포, 용산, 서빙고, 한강, 두모포, 뚝섬의 8강으로 세분화 됩니다.
8인의 독립운동가 이동녕, 김구, 조성환, 차리석, 이봉창, 윤봉길, 박정기, 안중근입니다.
왕실 묘원에서 공원으로 격하된 효창공원.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 정조의 큰아들 문효세자를 안장하면서 효창원이라 하여 왕실 묘원을 조성했습니다. (중략) 아름다운 왕실 묘원으로 유지됐던 효창원은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일본군사령부가 효창원 구역에 속한 만이창에 주둔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합니다. 일본은 효창원의 숲을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었고 승전 기념비를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애국선역 묘역으로 거듭난 효창공원. 해방 후 효창공원은 타향에서 생을 다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송환하여 안장해 애국선열 묘역으로 조성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 일에 앞장섰습니다.
한강 인도교와 을축 대홍수. 을축년 여름무려 네 번의 홍수가 발생했는데 그 중 7월에 발생한 주번의 홍수로 용산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920년대 한강 인도교 최고 수위가 평균 10미터였는데 을축 대홍수 때 11미터에 달했다고 합니다.
선택 아닌 강요 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청년들. 역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잊어서는 안될 기억을 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반드시 잊어서는 안될 기억입니다.
일제의 군기지화 과정입니다.
이주민에서 원주민으로.
사라진 마을 둔지미. 둔지미는 조선후기 둔지산 지역에 형성된 마을이었습니다. 영조 재위 시절 도성 밖에 설치한 한성부 남부 11방 가운데 준디방에 속해 있었습니다. (중략) 1905년 8월 일본은 군용지로 계획한 용산 내 300만 평 대지에 보상금 20만원을 책정합니다. 그리고 즉시 이전을 통보합니다. 일본의 군사기지화 정책에 따라 둔지미 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냉전 속에서도 뜨겁기만 했던 용산과 한국 내 작은 미국이 된 용산기지. 1945년 9월 일본군이 모두 철수하자 미 7사단이 조선군사령부 청사를 차지했고, 용산기지에는 캠프서빙고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습니다. (중략) 그러나 휴전이 되고 상시 주둔이 결정되자 미군은 이전보다 큰 규모로 용산기지를 정비하여 장기 주둔의 기반을 닦습니다. 이후 용산기지는 한국 내 작은 미국으로 서구 대중문화가 국내에 유입되는 창구이자 냉전식민주의의 표상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주한미군의 눈에 비친 도시 서울.
해방촌 전경사진과 마을사진 그리고 해방촌 입구 교차로사진. 저 사진속 귀여운 아이들은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을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한때 누군가의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기지촌 그리고 양공주.
특수 병원인 동시에 지역 거점 병원으로 그리고 용산철도병원 그 100여 년의 시간입니다.
용산철도병원의 변화와 새로운 의약품 의료시설로서의 위상입니다.
고풍스럽고도 효율적으로 지은 철도병원. 용산철도병원은 철근 콘크리트 기초에 벽돌 외장 벽체를 어한 혼합구조입니다. 과도기적 모더니즘 양극의 비대칭적 평면 구성에 벽돌 사용, 벽체 장식, 메스의 돌출과 후퇴 등의 장식이 부분적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제과산업의 격전지 그리고 용산 청과물 시장.
제과산업의 격전지. 용산은 1930년대 우리나라 제과 산업의 중심지 였습니다. 당시 제과는 대부분 일본인이 운영했는데 해방 후 한국인들이 인수했습니다. 1945년 박병규, 민후식, 신덕발, 현달성 4명이 나카오카 제과를 인수해 해태제과를 창립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1934년 창립된 풍국제과는 1956년 이양구가 인수해 동양제과로 전환했습니다. (중략) 롯데제과는 영등포로 이전하였으나 크라운해태제과와 오리온제과는 여전히 용산에 남아있습니다
용산역사박물관 개관 1층 답사기를 마무리합니다. 다음에는 2층 그리고 3층 답사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사실 수박 겉핥기인 감이 있지만, 여러분과 공유드리고 싶어서 사진과 영상으로 포스팅합니다. 용산역사박물관 아카이브미디어월에서 시작한 답사는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 그리고 왕실 묘원에서 공원으로 격하된 효창공원과 냉전 속에서도 뜨겁기만 했던 용산 한국 내 작은 미국이 된 용산기지까지.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22.5.18.수.
오늘 한줄.
용산역사와 용산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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