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근대 역사관, 근대화의 슬픈 목포의 기억
우리 대한민국 근대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슬픈 기록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법.
(목포 가볼만한 곳, 목포 역사공부 추천입니다. 바로 목포 근대 역사관입니다. 이날 진심으로 부지런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목포 근대 역사관 입장 마감 시간이 5시인데, 입구에서 허락해 주셔서 5시 15분에 입장합니다.)
(목포 근대 역사관 영상입니다.)
저 산 중턱에 목포 근대 역사관이 보입니다. 그리고 아래 소녀상이 앉아 있습니다.
평화비
우리는 꽃다운 아이에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강요당했던 이 땅 소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제 수탈의 현장인 이곳 일본영사관 옛터에
인원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목포시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종합안내입니다.
저는 이날 저 안내도 상단 6번 목포일본기독교회, 11번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15번 구 목포화신연쇄점, 그리고 하단 6번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외 일부를 답사합니다. 그리고 이제 '구 목포 일본영사관'으로 들어갑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과 구 목포 일본영사관
1897년 목포의 개항으로 외국인 각국 거류지 지역입니다. 조선시대 목포진 중심으로 해안가를 간척한,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잘 남아 있습니다. 유달산, 목포진, 선창을 연결하는 구조이며 구 일본 영사관과 동양 척식 회사 건물 외 다수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구 목포 일본 영사관은 경제 침탈과 식민지 지방통치의 상징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후 1906년 목포 이사청, 1910년 한일강제병합 목포부청, 광복 이후 목포시청, 1974년 목포 시립도서관, 1990년 목포 문화원, 2014년 목포 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면, 외벽은 붉은 벽돌이며 흰 벽돌로 일장기 등의 문양을 표현한 모습이 보입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종합안내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관람료 안내입니다.
관람시간은 평일 9시에서 18시까지, 토 일 공휴일 동일합니다. 휴관일은 1월 1일, 매주 월요일입니다.
매표 및 입장 마감은 1관, 2관 모두 관람 종료 1시간 전 17시까지 입니다.
XR로 보는 목포 시간여행입니다.
목포진으로 출발하다.
목포진의 설치와 목포의 역사
1429년 세종 21년 설치되었고, 책임자로 만호가 파견되어 만호진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1895년 군사제도 개편으로 폐지됩니다.
목포라는 지명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곳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까닭에 통칭 목포라 한다' 라는 기록에서 유래합니다.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 또는 강과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목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의 칙령 개항, 근대 도시 목포의 탄생
1897년 10월 1일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네 번째로 개항한 목포입니다.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한 최초의 항구로 관세 수입을 늘려 정부 재정을 확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영국, 러시아, 일본이 영사관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실제로는 일본만 설치합니다.
매립을 통한 목포 도시 영역의 확대
개항 당시 목포는 조계지 외 집을 지을 공간이 거의 없었던 이유로, 개항 이후 매립 공사가 진행되며 목포의 서해안과 남해은부터 시작합니다. (중략) 1960년 삼학도에서 갓바위까지, 1989년 갓바위에서 영산강 하구언까지, 그리고 하당 신시가지가 조성됩니다.
대영국정부기지비, 목포 각국조계비
개항 후 목포 만호동 영국영사관 부지에 세워진 기지비입니다
목포 각국조계장정에 의거 각국 공동조계지 내에 세워진 표지석입니다.
조선육지면발상지비
1904년 조선 영사 와카미츠 도사부로의 목포 고하도에서 육지면 시험 재배 성공을 기념한 비석입니다.
일본의 토지 침탈 고하도와 삼학도, 일본인의 조계지 독점, 그리고 일본 영사관
고하도는 목포와 바주하는 섬으로 열강들은 이를 군사적 거점으로 삼고자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입니다.
매립사업을 통해 조계지 공간을 늘리지만, 초창기 목포에 들어온 외국인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그들이 독접을 합니다.
일본 영사관은 1897년 목포 만호진 자리에 설치되고, 1900년 유달산 중턱에 새로운 건물로 이전,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이름과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대한독립만세)
(목포 근대역사관 내부영상입니다.)
구 동본원사 목포 별원,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동본원사는 일본 사찰로 본원은 일본 교토에 있습니다. 1898년 세워지고 신도수의 증가로 1905년 법당을 신축, 1907년 지원이 별원으로 승격합니다. 벽체는 화강암, 목재는 잣나무, 가문비나무, 육송으로 지어집니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1920년에 민족자본 육성을 위해 현준호를 중심으로 한국인 지역유지들이 힘을 모아 만든 은행입니다. 1942년 동일은행과 강제 통합되었고, 이후 조흥은행으로 이어집니다.
조선은행 목포지점,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
조선은행 목포지점, 1909년 한국은행 목포 출장소가 한일합병 이후 조선은행으로, 해방이후 다시 한국은행으로 명칭이 바뀝니다.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1908년 우리나라 경제 수탈의 목적으로 세운 일본 특수 국책 은행입니다. 대한민국 각지에 지점을 둡니다.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대각선에 위치하고, 광복 이후 목포해군경비부로 사용되며 해군관사로 활용됩니다.
구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 강당, 목포 구 청년회관
구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 강당, 일본인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된 초등 교육기관입니다.
목포 구 청년회관은 당시 목포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지어진 목포청년회 전용 건물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내부영상입니다.)
일제 지배에 대한 저항의 제일선이 되다
(목포 근대역사관 내부영상입니다.)
일제강점기 목포의 통치기관, 목포부, 목포경찰서
1905년 을사조약 후 영사관이 목포 이사청으로 변경, 1910년 목포부가 설치되어 무안군 지역까지 관할하다가 1914년 목포부와 무안군이 다시 분리됩니다. 광복 후 목포시로 변경됩니다.
1910년 강제병합 이후 목포경찰서 관할은 목포부, 무안군, 완도군에 걸치는 광범한 지역이 됩니다. 당시 일본인이 살던 영정과 항정에는 파출소가, 조선인들이 살던 죽동에는 주재소가 설치됩니다.
쌀의 수탈을 위해 3년 만에 개통한 호남선, 도로의 정비와 도시 기반의 확대
1910년 초 통감부는 대전에서 목포까지 호남선 노선을 확정, 5년 안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3년으로 단축합니다. 당시 매년 50만 명 이상 늘어나는 일본의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목포와 군산으로 쌀을 운반하여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한 목적입니다.
쌀 수탈의 본격화, 목포 주변의 주요 농장, 일본으로 실려 간 쌀.
일본인들은 목포 주변과 나주평야에서 토지를 헐값으로 대거 매입, 혹은 황무지의 개간, 그리고 고리대금으로 토지를 대규모로 빼앗아갑니다.
목포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간 쌀은 1911년과 1929년을 비교하면 9배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독립만세운동 영상입니다. 언제나 가슴뭉클하게 만드는. . . . . . . )
4.8 독립 만세 운동, 워싱턴 회의 때의 만세 운동, 광주 학생 운동 때의 학생 시위
외래 문화가 전파되다
종교의 전파
미국 선교사의 선교활동, 천주교회 성당 건립
호남 최초의 양동교회, 유진 벨 선교사의 선교 시작과 1910년 윤식명 목사의 석조 예배당 건축이 양동교회의 시작입니다. 아울러 유진 벨 선교사의 교육은 영흥학교의 모체가 됩니다.
전남 최초의 산정동 성당, 1898년 7월 알베르도 드애 신부의 목포 포교 활동을 시작으로 1911년 샤르즈뵈프 목포 성당 임시 주임신부가 산정동에 새 성당을 지은 것이 시작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내부영상입니다.)
여기까지가 목포 근대 역사관 1관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서 목포 근대 역사관 2관으로 걸어갑니다. 하지만 리뉴얼에 따른 임시휴관입니다. 목포 근대 역사관 2관 리뉴얼 기간은 2022년 6월 14일에서 2022년 10월 까지입니다.
구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지점,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층별안내
1908년 우리나라 경제 수탈의 목적으로 세운 일본 특수 국책 은행, 혹은 특수 회사입니다. 대한민국 각지에 지점을 두었고 식민지 지주 육성, 농장 관리, 금융 등이 주요 업무 입니다. 서울에 본점을 두고 전국 주요 도시 9곳에 지점을 세웁니다.
결연한 전진, 차별 없는 평등 사회에 대한 열망,
해방 조국에 대한 열망, 항일의 결의를 다짐하는 노동자상의 염원.
"7시에 시작하고 7시까지 12시간 일해야 혀 (중략) 다리가 잘라졌다, 손이 잘라졌다, 어디가 깨졌다, 뭔 부상자가 삼분지 이는 돼."
저의 이번 목포 출장은 업무로 시작했지만, 배움과 교훈으로 마무리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22.8.31.수.
오늘 한줄.
그리고 드디어 1991년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있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우리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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