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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교육자료

기억하는 사람들 강제징용노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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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사람들 강제징용노동자상
용산역 광장 강제징용노동자동상을 만납니다.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과거의 사실입니다. 건너편 고층 빌딩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 살, 베인 검은 두 손에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이미 진실은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과 침략을 미화하고 있는 현실, 우리는 그 모습과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제 강점기 수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 곳 용산역에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용산역에 끌려온 그들은 일본 국내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등의 광산, 농장, 군수공장, 토목공사 현장에 끌려가 인산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아래 착취당했습니다.

(과거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축할 당시, 기록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정당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했고, 적절한 수당이나 댓가가 지불되지 않으면 파업도 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수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 용산역에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중략) 1920년에서 1930년대 일본 언론의 고발로 일부 확인된 사진들을 통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으며 수많은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화면속의 남자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20대에서 30대로 보이는 어쩌면 그 보다 더 어린,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자 친구 그리고 동료 였을 것입니다.)

일제강점하의 용산역사 전경. 군인, 군속, 노동자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이곳 용산역에 모여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과 신의주로 출발하였다.

(강제로 끌려오기도, 어쩌면 그냥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열차를 타고 출발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중국의 주요 전선은 만주를 비롯한 16개의 성, 남쪽의 하이난 성을 포함한다. 일제는 이들 대부분 지역에서 조선인들을 군인, 군속, 위안부 등으로 강제 동원하였다.

(누군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을 붙잡아가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아프면 제대로 치료도 하지 않았으며, 이유없이 죽였다면 우리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국가의 의무와 책임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사할린과 쿠릴열도는 특히 추위와 배고픔 강제노동과 민족차별을 견뎌야 했던 사할린 강제동원 조선인들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되는 2차 피해를 겪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에 조선인이 가장 많이 동원된 곳이다. 전투를 위한 병력동원보다는 일본인 남성의 입대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노동력 동원의 피해규모가 컸다.

한반도는 일제는 모집, 관알선, 징용을 통해 조선의 청장년을 해외로 강제동원하는 외에 근로정신대, 근로보국대 등의 이름으로 한반도에서 노동력을 수탈하였다.

동남아시아와 중서부 태평양 지역은 일본의 침략전쟁 확대로 전선이 동남아시아를 넘어 중서부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이곳에 동원된 조선인은 더위와 풍토병의 위험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거나 전투를 치러야 했고, 전쟁 막바지에는 폭격과 굶주림, 병으로 밀림 속에서 죽어갔다.

(감히 신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그들이 진정 잘못을 뉘우친다면 용서하시겠습니까? 나는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2022.5.25.수.
오늘 한줄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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