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기억납니다. 1993년 여름 포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우리 식구는 서울로 이사를 옵니다. 당시 개발이 안된 가양동, 새롭게 아파트가 들어서는 시기에 저는 가양동과 만납니다. 초등학교를 포항에서 6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반 학기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보냅니다.
1994년 공진중학교 입학, 신설 중학교였습니다. 1학년 3반, 2학년 1반, 3학년 5반 아직까지 기억납니다.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한 친구들이 이 때 만난 친구들입니다.
2022년 2월 어느날 완전 최측근 절친 친구 1명이 저희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바깥에서 식사하기에 부담이 되어 단둘이 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제게 옛날 우리가 다녔던 학교를 보고 싶다하여 함께 28년전 그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저희 중학교는 아쉽게도 공진중학교는 2020년 폐교합니다. 이유는 급감하는 학생수로 인하여.
친구와 함께 학교를 거닐었던 2월의 어느 날, 그날따라 눈도 많이 왔습니다. 오다가 그치다가 반복하는 추운 겨울, 마치 졸업식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보고 싶어도 흔적조차 없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았습니다.
공진중학교의 추억, 바로 저 곳이 매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쉬는 시간 친구들과 간식을 사서 먹었던 매점. 여러분들도 같은 추억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제 매점을 둘러보고 운동장으로 걸어갑니다. 마치 1994년 중학교 1학년 3반 이차장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를 하던 생각이 납니다. 갑자기 1994년 미국월드컵 대한민국 독일전도 떠오릅니다.
소나무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습니다. 쌓여 있는 눈들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녹아버릴겁니다. 마치 저의 유년 시절이 지나가면 추억으로 남겨지듯이.
공진중학교가 2020년 폐교되면서, 강서양천제1발명교육센터로 전환됩니다. 제 기억으로 저 건물에 94년 당시 1학년 반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신설 중학교라 당시 전교에는 1학년과 2학년까지만 있었고.
이제 공진중학교 정문으로 걸어가봅니다. 때마침 눈이 내려서 운치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때마침 저의 추억여행에 선물을 주셨습니다.
보시면 'ㄷ' 형태의 모습입니다. 아직까지 정문 앞에 뜰이 남아 있습니다.
정문을 바라보는데 1997년 공진중학교 졸업식 날이 떠오릅니다. 1997년 당시에 엄마, 외할머니, 이모까지 오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지금 2022년 무려 25년이 지나서 바라보는 기분은 뭉클합니다.
시계는 당시에 저 위치에 있었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교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맑은품성관이란 단어는 새로 생긴 것 같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외부 모습만 사진에 담습니다.
사실 요즘은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데, 저 날은 운이 좋아서 잠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문에서 관계자분께 잠시 양해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토,일요일 주말도 운동장은 개방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끼리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공진중학교 운동장입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대한민국은 아쉽게 16강을 올라가지 못 했습니다. 결과는 스페인전 2:2, 볼리비아 0:0, 독일전 3:2 으로 2무 1패, 하지만 1994년 미국월드컵 대한민국 독일전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줬습니다. 그 열풍으로 중학교 1학년 1994년에 엄청나게 축구를 했습니다.
이 건물은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새로 증축할 시기만 해도 2020년 학생 수 급감으로 인한 폐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추억이 하나 둘 씩 사라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은 흔적을 모두 사진에 담아봅니다. 영원히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어서.
공진중학교 교훈. 맑은 품성 밝은 지혜 굳센 체력. 어릴 때에는 몰랐습니다. 당시에 교훈이나 교과서에 나왔던 문구들이 너무 진부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바라보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공진중학교의 추억을 담아서 집으로 가는 길, 허가바위를 만납니다.
아래 사진은 허가바위입니다. 양천허씨 허선문이 출생한 곳이라는 설화. 바위에 동굴이 뚫려있어 공암이라고 불립니다. 동굴의 크기가 제법 큽니다. 아래 사진을 참고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허선문이라는 이의 후손들이 훗날 공암 허씨가 되었고, 신라시대에는 이곳을 공암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양천으로 불렀습니다. 따라서 공암 허씨는 양천 허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준과 홍길동전의 허균 그리고 여류시인 허난설헌 끝으로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허종이 양천 허씨라고 합니다.
2022.2.19.
오늘 한줄.
영원히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 어쩌면 지금도 먼 훗날 돌아가고 싶은 추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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