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사박물관 2층 답사기
용산역사박물관 2층 답사기
저번주에 시간 관계상 용산역사박물관 1층만 답사하게 되어서, 이번에는 용산역사박물관 2층 답사기를 포스팅 해봅니다. 용산의 역사를 살펴보며 아울러 우리 대한민국 역사도 미루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층 계단으로 걸어갑니다.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인터렉티브 콘텐츠 안내입니다.
바닥에 그려진 동그라미 중 한곳에 서서 잠시 기다리면, 위치에 따라 동물 또는 상상의 존재들이 등장하여 행진에 함께 하거나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나타납니다.
에필로그 내일로 가는 용산
작가 최지욱님과 이재옥님의 작품입니다. 용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즐거움, 그리고 희망의 메세지 등 여러 장소를 배경으로 행진하는 사람과 동물, 상상의 존재들을 통해 미래도시 용산의 메세지를 담았습니다.
AMORE 색을 입히다
아모레퍼시픽은 1932년 어머니의 부엌 속 작은 동백 씨앗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움의 역사를 써온 기업으로 용산 한강로에 위치하여 코티분, 파운데이션, 썬쿠션 등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으며(중략)
ORION 정을 나누다
오리온제과는 1960년 풍국제과를 인수하여 용산에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1974년 오리온의 대표제품인 초코파이를 생산하여 오랜기간 남녀노소에세 사랑을 받으며 글로벌 간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용산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대표기업 화장품 아모레와 제과 오리온에 대한 소개입니다.)
철도도시, 국제도시, 기술도시, 문화도시
경계를 풀고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용산
둔지산 자락은 평탄한 평지를 이루고 있어 조선의 군사 요충지가 되었지만 이는 외국군에게도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중략) 실제 전후 용산을 중심으로 빠르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미군이 용산기지에 주둔하게 되면서 국토재건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중략) 2003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지이전을 합의했고 100여년 동안 외국군이 차지했던 용산기지 반환이 결정됩니다.
(군사기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을 하고 있는 용산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주한외국대사관 분포현황입니다.
글로벌 시티 용산입니다.
용산구의 별칭은 서울시 외국인 특별구라고 합니다. 한복판에 있는 미8군을 중심으로 한남동과 동부이촌동 등 곳곳에 위치한 외국인 집단 주거지와 외국인 공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외국인 쇼핑상가인 이태원도 용산구에 속해 있습니다.
경강 일대 토속 신앙의 흔적이 곳곳에, 용산의 다채로운 종교 문화 소개입니다.
용산구 내 부군당 분포현황입니다.
남이장군사당, 청암동부군당, 산천동부군당, 이태원부군당, 보광동부군당, 한남동부군당, 김유신장군사당, 동빙고부군당, 서빙고부군당이 있습니다.
(부군당은 쉽게 말해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을 뜻하며,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관청에서 신을 모신 곳을 말합니다.)
삼각지 화랑거리가 형성된 배경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 일부가 삼각지에 있던 화랑에 초상화를 주문하면서 삼각지 화랑거리가 형성됩니다. 수요가 늘면서 용산역 방향의 한강로를 따라 화랑과 표구정 그리고 액자 전문점이 생겨납니다.(중략) 1960년대부터 미국 회사를 통해 수출 경로가 열리면서 화랑들은 본격적으로 상업화 제작에 나섭니다.
미8군 무대가 바꿔놓은 한국 대중음악입니다.
미군 위문협회는 미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미국 본토에서 파병지로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여 위문 공연을 펼쳤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규모가 커지고 체계화됩니다. (중략) 미8군 무대는 '미8군쇼'로 재정비 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 미8군 무대가 축소되면서 가수와 연주자들은 확장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 시장으로 활동 무대를 옮깁니다.
제3한강교 입니다.
이방의 문화를 기꺼이 끌어안은 용산의 품
(중략) 미군 주둔과 함께 인근 이태원에는 기지촌이 형성되면서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물품과 영화 그리고 음악, 미술 등의 미국 대중문화가 용산에서 한국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갑니다. 오랫동안 이방의 문화를 흡수하고 전파해온 용산은 문화적 포용력이 높은 지역적 특색을 갖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다양한 외국인 공동체가 용산 일대에 자리잡습니다.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터전 용산입니다.
용산 도시를 살리다, 철도 그리고 철도병원 이야기. 2022년 3월 23일에서 9월 18일까지 입니다.
철도로 연결된 도시, 경인선과 인천.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일본과 청나라를 비롯하여 여러나라 공동 조계가 형성되면서 국제도시로 발전합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을 개통하고, 1900년에는 서울역까지 노선을 확장합니다.
경부선과 부산
(중략)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뒤이어 북항, 부산진, 남항 등지가 매립되면서 근대 항만시설이 구축됩니다. 특히 북항에는 부산역, 우체국, 세관, 부두와 같은 공공시설과 회사, 여관 등 상업시설이 밀집됩니다.
경의선과 신의주
신의주는 일제가 경의선을 부설하여 탄생한 신도시입니다. 일제는 러일전쟁을 위해 압록강변의 진흙 벌판이었던 신의주를 경의선 종점으로 결정합니다. 1906년 경의선이 개통되고 1911년 압록강 철교가 놓이면서 신의주는 조선과 만주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로 탈바꿈합니다.
전국의 철길이 모인 용산
1899년 경인선 인천과 노량진 구간이 개통되고 1900년에 한강철교가 가설되어 기차를 통한 대량 화물 수송이 가능해지면서 용산은 한강 물길을 따라 인천까지 증기선이 오가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시가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약 115만 평의 땅에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그외 51만 평의 부지를 철도용지로 수용합니다.
철도 신도시 용산철도관사
1906년부터 용산역 앞 한강동에 3동에서 8동 관사들이 지어지면서 용산철도관사단지가 조성됩니다. 부지는 격자형으로 구획되었는데 철도공장, 철도학교 같은 철도 운영에 관한 핵심 시설들이 용산에 밀집되었던 만큼 다른 지역보다 관사의 규모가 컸습니다.
근대 도시의 사고와 질병입니다.
근대 도시는 교통 발달,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제를 맞딱드리게 했습니다. 전차, 기차, 자동차와 같은 근대 교통수단은 이전의 마차, 인력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빠르게 이동시킨 반면 빈번하고도 위험한 교통사고를 초래합니다. 또한 지역간 교류의 매개체로서 교통수단은 전염병을 다른 지역으로 더욱 빠르게 전파시킬 위험이 있었습니다.
경성요부입니다.
조선교통전도입니다.
관립 병원의 건축흐름
일제강점기 설립된 관립 병원은 시기별로 건축 재료와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1909년부터 1910년 중반까지는 주로 비늘판벽으로 마감한 1층 목조 건물이 조성됩니다. 진료공간과 사무공간이 구분되고 수술실은 본관과 별도로 분리되었습니다. 1910년 중반부터 2층 규모의 벽돌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하고, 진료과목별로 진찰실이 세분화되고 부속실을 첨가해 보다 전문적인 의료가 이루어집니다.
용산 철도병원의 건축적 가치입니다.
1923년 종업원양성소가 이전하면서 그 부지가 용산철도병원으로 합병되어 병원 부지가 크데 확장되고, 넓어진 부지에 병원 건물이 연이어 신축되었고 여거에 따라 목조, 벽돌조, 철근 콘크리트조로 된 건물들이 들어섭니다. 건물이 신축될 때마다 기존 건물은 병실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새 건물에는 신설된 진료 과목과 최신 설비가 배치되어 용산철도병원은 점차 종합병원으로 거듭납니다. (중략) 1928년에 준공된 용산철도병원 본관은 같은 시기에 조성된 근대 건축물 중에서도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이자 철도 의료기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용산철도병원의 변화입니다.
철도 의교의 중심, 용산철도병원입니다.
상단은 에필로그, 하단은 프롤로그 사진입니다.
(이번 '용산역사박물관 2층 답사기' 포스팅과 며칠 전 '용산역사박물관 1층 답사기'는, 제가 사실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어 다소 재미가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용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도 함께 음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여러분께도 시간이 되시면 용산역사박물관을 방문하시는 것도 적극 추천드립니다.)
2022.5.26.목.
오늘 한줄.
5월 어느날 용산으로 함께 읽어보는 대한민국의 일기장.